Peter Pan in NeverLand
[레고 MOC] ARF-03 제작기 #01 본문
레고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어떻게 보면 특징없는 작고 네모난 부품들이 모여서, 집도 만들어지고, 자동차도 만들어지고, 심지어 캐릭터도 만들어지는 것이 레고이다. 레고는 여자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창작이 가능하다고 할만큼, 레고로 만들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런고로, 레고는 만들어야 재미다. 벌크가 서말이라도 조립하지 않으면 그저 플라스틱 덩어리일 뿐!!
그런 관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레고의 최고 매력이자 진정한 즐거움은 창작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서를 보고 만드는 것도 좋지만, 기왕이면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그것이 집이 되었건, 자동차가 되었건, 암튼 여자친구는 빼고, 직접 만들거나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레고가 가진 궁극의 즐거움이다. 판타지 시대나 아득한 옛날부터 현대를 거쳐 저기 먼 미래까지 레고로 만들 수 없는 것이 없는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럼 만들면 된다.
다만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다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여자친구처럼.^^;;
내 레고 창작의 범주와 주된 관심은 메카닉, 흔히 이야기하는 로봇, 그 중에서도 인간형 메카닉이다. 건담 류의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누가봐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간단해보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난해하지도 않은, 멋지고 그러면서도 가지고 놀 때 쉽게 분해되지 않는 강도와 마음껏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그런 메카닉을 만들고 싶었다. 건담도 좋고, 다른 멋진 로봇들도 많지만, 나만의 로봇, 내가 디자인한 로봇이 있다면 그 역시 충분히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프라모델을 개조하거나 다른 조형 도구를 써서 처음부터 창작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그 정도 손재주는 없다. 나도 안다. 어느 정도 재료가 뒷받침되어야 적절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수준이다. 비냉이 있어야 물냉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아니, 반대인가?
아무튼, 예전에 이 홈피에서도 소개했던 AW-09는 창작 메카닉을 향한 그 당시 내가 가진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한 야침찬 도전이었고, 만든 후의 만족감과 적당히 잘 나온 디자인으로 당시 활동하던 카페에서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 내 첫 결과물에 대해서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다. 오히려 레고 부품의 크기와 결합 방식으로 인한 묘사의 한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관절 강도 부족은 레고로 충분히 가지고 놀기 좋으면서 멋진 로봇을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이 남았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걸 보고 따라하기에는 알 수 없는 결합 방법도 너무 많고, 이건 여기가 별로고, 저건 저기가 별로고, 이렇게 만들면 가동성이 떨어지고, 저렇게 만들면 내구성이 문제고, 비싸기는 왜 이리 비싸. 설명서대로 만들어도 이쁘기만 하구만. 근데 설명서대로 만들꺼면 더 디테일하고 가격도 싼 프라모델이 있잖아. 뭐야, 속았어. 그냥 프라모델하면 되잖아. 나만의 로봇같은 거 안 만들어도 멋진 디자인의 로봇들이 이렇게 쏟아지는데. 인생 낭비했네. 이런 레고. 쳇.
물론 아이와 놀기 좋다는 이유로 레고는 계속해서 장바구니에 담기고 있었다.....
아무튼 레고로는 내 마음에 드는 메카닉은 불가능하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렸음에도, 여전히 나는 레고 창작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질척이고 있었다. 구글링을 하고, 레고 잡지를 들춰보고 하면서, 경제적인 이유와 아이디어 문제로 나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멋진 디자인의 로봇들을 찾아보며 신포도만 외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브릭인사이드라는 사이트에서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된다. 부품의 한계없이 조립 가능하고(레고사에서 신규 부품을 추가하면 스튜디오에서도 빠르게 업데이트를 한다!!) 조립한 모델에 필요한 부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와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은 그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레고 창작 메카닉의 길을 다시 열어주는 문과 같았다.
스튜디오를 활용해서 처음 도전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레고 메카닉 구글링을 하던 도중 알게 된 PlusL이라는 어플에서 본 메카닉이었다. PlusL은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는 어플로, 기존의 제품을 활용한 새로운 창작법을 소개해주는 어플이다. 위에 써놓은 Rebrickable의 스마트폰 버전이라고 할까? 여기에는 기존 제품의 활용 외에 순수 창작품도 있었는데 꽤 괜찮은 디자인의 창작 메카닉이 무료로 소개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한 부품과 설명서까지 나와있다. 이 어플에서 소개된 레고 메카닉들은 내가 추구해오던 레고 메카닉과 많이 닮아있었다. 됐어. 이제 할 수 있다. 나도 비까번쩍한 레고 메카닉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어!!! 피카추를 꼭 가지려고 했던 로켓단이 눈 앞에 쓰러진 피카추를 보고 있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그래, 내 레고 메카닉은 너로 정했다!!
PlusL 어플에 소개된 멋진 메카닉들 중에서 내 눈에 가장 멋지게 보였던 것이 바로 이 BRF-01Eagle이다. 첨언하자면, 저 BRF라는 약자는 아마도 Blue Robot Fighter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이 창작자의 작명센스도 내 작명센스 정도로 매우 열악한 수준... 큼..큼... 아무튼 이 녀석을 스튜디오를 통해서 만들어내면 부품 관리까지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컴퓨터에는 스튜디오를 띄우고, 책상에 스마트폰으로 설명서를 보아가며 만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시간일 뿐. 필요한 부품을 구매하는 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그런데 공을 들여(?) 완성된 BRF-01은....
.... 누구냐 넌? 저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간지가 뚝뚝 떨어지는 로봇은 어디가고, 어색한데 어디가 어색한지 꼭 집어서 말하기 힘든 이 로봇은 대체 누구냔 말이다. 너 혹시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그 네모난 로봇은 아니지? 팔은 좀 길고, 다리는 좀 짧은 것 같아 보인... 아, 그래... 그 멋진 건담도 그냥 뻣뻣한 차렷자세로 세워놓으면 이상한 법이지. 다리도 좀 벌리고, 고개도 좀 숙이고, 팔도 좀 벌리고 하는 식으로 자세를 잡아줘야 진정한 간지가 나는 법. 물론 스튜디오에서도 이런 자세를 잡는 기능을 제공하지만, 나는 아직 초보인지라 자세를 잡으려고 하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긴다. 스튜디오 상에서 간지나는 자세를 잡는 건 지금의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 실제로 만들어서 자세를 잡아보면 스튜디오에서 보이는 어색함은 분명히 사라질 꺼야. 분명해. 그.런.데.
아... 이건 좀... ㅠㅜ 가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절 부품을 ㅣ 자로 결합하지 않고 ㄴ 자로 결합한 것 때문에 라인을 포기하다니!! 소개 사진에서는 자세를 살짝 취하고 있어서 전혀 알 수가 없었잖아!! 차렷 자세 안 취하면 된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기본 라인이 무너졌잖어. 게다가 무릎 관절하고 발목 관절은 왜 이리 떨어져 있는 거야. 이거 좀 이상한데... 독특하고 좋지 않냐고? 아니 그건 내 취향아냐... 취존해주시죠. 내가 이러려고 스튜디오로 그 시간을 들였나 자괴감들고 괴로워... 야, 너 이름이 뭐니!!! 아, 됐어. 다 집어쳐. 역시 그럼 그렇지. 레고는 매번 이렇다니까.
...하며 접기에는 레고는 너무 좋은 컨텐츠였다. ㅋ
이것이 만약 프라모델이었다면 깍고, 자르고, 붙이고, 갈고, 파고 등등 내 손재주에 의존해야하는 수많은 작업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레고는 적절한 부품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제공하는 부품의 수는 무한대. 지구부터 달까지의 거리를 레고로 연결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있다. 물론 컴퓨터 사양이 받쳐준다는 전제 하에. 게다가 일단 원작 그대로 만들면서, 스튜디오의 기본적인 기능들에는 익숙해진 상태. 기존 작품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 그럼 그 부분을 다른 부품으로 마음에 들게 고치면 된다. 기믹을 추가하는 거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만, 형태를 좀 바꾸는 정도는 난이도가 좀 낮지 않을까?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거다. 아... 이게 제일 큰 문제였구나...;;
그렇게 일단 삽질을 시작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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