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팁] 완성도를 높여보자 - 건담마커를 이용한 먹선 넣기 본문
먼저 이게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게, 굳이 포스팅을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을 좀 했다.
'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흔하고 잘 알려진 방법이라서 별도로 포스팅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작업 방식을 기록해놓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려서, 결국 별 팁도 아닌 팁이지만 포스팅 결정.
포스팅의 내용은 제목의 내용 그대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요즘 프라모델의 기본 품질은, 굳이 반다이 건프라가 아니더라도, 매우 좋고 편의성 또한 좋은 편이다.
색 분할도 잘 되어 있고, 제품에 따라서는 도색되거나 탄포 인쇄가 된 부품이 포함되어 있는 등,
그냥 조립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모형이 탄생할 수 있게 제품이 나온다.
라떼는 말이야, 설정 색만 맞추려고 해도, 마, 킷의 대부분을 도색해야지만 가능했어, 마..... 아. 어디서 쉰내 난다.
하지만 프라모델은 그 태생부터가 만드는 사람의 노력과 정성에 따라서 완성도가 달라지는 것이 매력이었던 카테고리.
게다가 프라모델의 완성도는 그냥 단순히 조립만 하느냐, 전체 도색을 하느냐로만 나눠지지 않는다.
모형 작업이 마무리되는 것은 조립과 도색 사이 수많은 지점 어딘가가 될 수 있고,
따라서 같은 제품이라도 작업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프라모델이라는 취미가 가진 장점이다.
완성도를 올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이번 글의 주제인 패널 라인에 먹선을 넣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 대표 프라모델 사이트인 달롱넷에서 퍼온 소위 페건이라 불리는 킷의 비교 사진.
왼쪽이 그냥 조립만 한 킷이고, 오른쪽이 먹선을 넣은 킷이다.
조명의 차이가 있어서 흰색의 느낌은 좀 다르지만, 먹선을 넣고 안 넣고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먹선을 넣지 않을 때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던 패널 라인들이 먹선을 넣음으로 해서 확실히 보이고, 덕분에 킷의 정보량이 늘어난다.
여자들이 악세서리를 하면 시선이 분산되어서 더 예쁘게 보인다는 연구처럼, 먹선은 킷의 정보량을 늘려서 킷의 완성도를 올려주는 것.
먹선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쯤이면 분명히 알았을 것 같고, 그럼 이번에는 실전이다.
사실 먹선을 넣는 데에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먹선을 넣으려면 에나멜에 신너를 타서 묽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마저도 요즘에는 패널라이너라는 제품으로 잘 나와있어서 그런 준비 과정조차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게 먹선을 넣고 면봉이나 휴지에 에나멜 신너 혹은 라이터 기름을 묻혀서 삐져나온 먹선을 지우면 끝.
...인데, 지울 때 신너를 너무 많이 묻히는 바람에 열심히 넣은 먹선을 모조리 지워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지울 때 번진 패널 라이너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부품에 살짝 거뭇한 흔적을 남겨버리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에나멜 신너를 많이 사용하다가는 부품이 갈라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간혹이지만 발생했다.
결국 이렇게 간단한 작업에서도 작업자의 실력이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프라모델의 특성이 다시 한번 떠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신너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할 때만 잠시 뚜껑을 연다고 해도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에 대한 염려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가끔 아이가 게임을 하거나 다른 놀이를 할 때 옆에서 프라모델 작업을 하는데, 신너 냄새를 풍기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많이 꺼려지는 상황.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최대한 간단하고 단순하게 작업이 가능한 먹선 넣기는 반다이에서 출시한 건담마커를 이용한 먹선 넣기!!
반다이에서 이것 말고 먹선 펜을 따로 출시하기도 했는데, 선이 좀 흐릿하고 몇 번 사용하니 펜 끝이 뭉개져서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간단하게 부분도색을 할 수 있도록 출시한 유성 마커로, 펜촉을 살짝 누르면 잉크가 세어 나오는 구조다.
이것 말고도 먹선용 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게 있는데, 나는 그냥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하는 중.
(이라고 쓰고 아직 마커 잉크가 많이 남아서 다른 제품을 사기에 좀 아깝다고 읽는다... 짠내 나는 모형 생활 중..ㅋ)
여담으로 앞서 소개한 달롱넷에서 사이트 쥔장인 달롱 님의 마커로 먹선 넣는 법을 사이트에서 본 것 같은데 다시 찾아보니 못 찾겠다...;;;
정말 정말 내가 봐서 나중에 써먹어봐야지 했는데...-_-;; 암튼 다른 펜을 사용하고 싶다면 인터넷을 좀만 뒤져보면 금방 나온다.
먹선을 넣을 곳에 정답은 없다.
작업자의 취향에 따라서 넣고 싶은 곳에 넣으면 되는데, 나는 일단 음각으로 파인 곳과 꺾인 부분 위주로 넣는다.
흰색 부품은 기본적으로 다 넣고 색 부품은 색의 음영에 따라서 선택하는데, 검은색 부품은 먹선을 넣지 않는 것을 방침으로 하고 있다.
마커의 펜촉이 굵어서 얇은 선에는 펜촉 끝이 닿지 않지만, 상관없다.
펜으로 선을 긋는다는 느낌이 아니고 펜에서 잉크를 짜내서 흘려 넣는다는 느낌으로 작업하기 때문.
홈의 한쪽에 마커를 대고 살짝 누르면 마커에서 잉크가 흘러나와 모세관 현상으로 인해 홈을 따라 라인이 그려진다.
다만 잉크가 점성이 살짝 있고, 프라 표면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아서 생각만큼 잘 안 퍼지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마커를 움직여가면서 잉크를 흘려 넣으면 된다.
그런 곳은 위의 사진처럼 마커 자국이 패널 라인을 따라서 지저분하게 찍히지만, 뭐, 상관없다.
나중에 다 지우면 되니까.
부품을 다듬고 먹선을 넣을 것인지, 부품을 다듬기 전에 먹선을 넣을 것인지는 순전히 선택사항.
작은 부품은 다듬은 후에 먹선을 넣으려면 부품을 쥐는 것이 까다로워서 다듬기 전에 런너 채로 먹선을 넣는 것을 선호하는데,
나중에 조립하다가 부분 부분 먹선을 넣지 않은 곳이 발견되기도 하는 단점이 있긴 하다.
미처 먹선을 넣지 못한 곳은 나중에 먹선을 넣어도 되니까 별로 큰 문제는 아니다.
이 먹선 넣기는 사실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한 스킬이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위 사진의 비행기같이 보이는 부품은 음각이 깊은 패널 라인이 다수 있었는데, 완전히 좁지는 않아서 먹선이 애매하게 들어갔다..;;
라인의 폭이 아주 좁지는 않아서 그 부분을 살리고 싶었는데, 깊이 때문에 라인 바닥에서 번진 먹선을 지우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실력 있는 모델러라면 그런 번짐 없이 먹선을 넣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같이 투박한 작업자는 그런 거 없다.
그래서 아래 완성 사진을 보면 결국 저 부품은 그냥 저 홈을 검은색으로 다 메꿔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설정이 어떻고, 작업 스킬이 어떻고, 다 모르겠고 이러나저러나 작업자가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ㅎㅎ
번진 먹선을 지우다가 런너에서 부품이 분리되면서 런너 자국을 다듬기 힘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부품을 다듬은 후에 번진 먹선을 지운다.
먹선을 지우는 것은 지우개로 충분!!
신너 냄새를 풍기지 않고 먹선을 지우는 나름 친환경(?)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전체 도색과 다르게 이 작업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지우개는 너무 작지 않은 사이즈로 잘라서 쓰는 것을 추천하는데, 먹선을 지울 때 모서리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
크던 작던 사면체의 모서리는 12개고, 그 모서리가 뭉개지면 잘라내는 것 이외에는 다시 날카로운 모서리를 만들어낼 방법은 없다.
다만 너무 작게 자르면 손에 쥐기가 힘들 뿐 아니라 잘 부서지기 때문에 작업 효율이 떨어지니까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게 제일 좋다.
그럼 처음부터 아예 자르지 않고 모서리가 뭉개질 때마다 모서리 부분만 잘라서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봤는데,
모서리를 세우기 위해 잘라낸 애매한 크기의 지우개 덩어리가 나는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더라...;; 아우, 진짜 짠내나...;;
여튼 그래서 나는 지우개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지우개를 사용해서 좋은 이유 중에는 주변에 크게 피해를 주지 않고, 별다른 전용 도구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 말고도
칼로 쉽게 다듬는 것이 가능해서 원하는 사이즈로 만들기가 매우 쉽고, 탄성이 있어서 얕은 홈의 라인을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위 사진은 허벅지 부품인데, 중앙에 있는 패널 라인을 보면 면과 면이 수직으로 만나서 생기는 라인이다.
앞서 이야기한 면봉에 신너를 묻혀서 지우는 작업할 때는 이런 부위의 먹선을 곧잘 전부 지워버리고는 했다.
물론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작업자의 스킬이 단지 부족할 뿐이지만....ㅠㅜ
어쨌든 스킬이 매우 많이 부족한 이런 작업자라도 지우개를 이용해서 작업을 하면...
개인적으로는 신너를 묻혀서 작업하는 것보다 지우개를 사용해서 작업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더 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굳이 도색하지 않고 조립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RG 시리즈나 간단히 손맛을 느끼고 싶은 킷들에는 이 방식을 적용하는 중.
이렇게 먹선만 넣은 킷의 최종 느낌은 이렇다.
작업은 적당히 부품을 다듬고 먹선을 넣은 것이 전부.
사포질도 안 하고, 부분 도색도 안 하고, 스티커는 최소로 사용했지만, 먹선 덕분에 확실히 보기 좋아졌다.
라인이 또렷해진 것만으로도 밋밋한 부분이 많이 사라지는 효과도 있고, 그림으로 보이는 것과 유사해지는 측면도 있어서
그냥 조립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수고를 들여서 먹선 정도는 넣어서 완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마감재를 뿌려서 전체 광택을 조절하는 정도인데, 도색 없이 마감재 작업만 해도 여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그런데 열심히 칭찬을 늘어놓기만 한 이 작업 방식이 완전 무결하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건담마커의 특성상 마감재 작업이 불가능하다.
전에 멋모르고 건담마커로 먹선 작업을 한 부품에 락카 마감재를 올린 적이 있는데 락카에 먹선이 녹아서 번지는 일이 있었다.
즉 이 작업은 마감재를 아예 배제하고 시작하거나, 혹은 마감재에 녹지 않는 펜을 사용해야 한다.
마커가 녹는 단점은 이후의 단점에 비하면 어쩌면 사소한데, 지우개로 먹선을 지우면서 생기는 지우개 가루에 대한 확실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단 지우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가루를 잘 처리해야 하는 것은 위생과 청결을 위한 기본이기도 하지만,
지우개 가루가 프라모델과 오랫동안 접촉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부품이 녹는 사태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지우개 가루를 우습게 생각했다가는 부품의 형상에 문제가 생겨서 결국 멀쩡한(?) 킷을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은 작업의 간단성과 반비례해서 매우 비효율적이고 지루한 구석이 있다...;
도색 작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우개로 부품에 번진 마커 자국을 지우는 것은 꽤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퇴근 후 남는 시간 짬짬이 했다고는 하지만, HG수준의 킷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달이 걸렸다... RG 작업을 할 때면...;;;)
에나멜을 신너로 지우는 것과 비교하면 이쪽이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고 지루한 작업으로 여겨진다.
(물론 나 같은 쪼랩 모델러는 신너로 지우다가 지우지 말아야 할 곳까지 지워서 다시 작업을 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비슷할 지도??)
각이 많이 진 부품을 다듬을 때는 지우개질 중에 무너지는 지우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마커의 흔적을 바라보며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작은 부품 하나에 시간을 쏟아붓고 있나 하는 회의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완성한 킷은 그냥 조립만 했을 때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면이 있다.
깔끔하게 손질되어 판매되는 기성 가구보다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들었다는 경험 때문에 더 높은 만족도를 주는 이케아 가구처럼 말이다.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단순히 조립만 했을 때에 비해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이 과정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계속 프라탑은 높아만 가는 거지, 뭐... 그런 거지... 그래, 그게 봉이지. ㅋㅋㅋㅋ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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