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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성찰 #7 - 아이에서 어른으로 본문

머릿속 탐구/낙서

자아성찰 #7 - 아이에서 어른으로

☜피터팬☞ 2022. 8. 1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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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서 어른으로 2

 

신기하지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릴 적엔 상상치도

못한 일이 생겨

체하지도 않고 목에 가시도 걸리지 않을뿐더러

울 반 반장이랑 내 짝꿍의 소문에도 호들갑 떨지 않게 돼

 

오묘하지 어른들의 세계란

알 수 없지 인생이란

무덤덤해진 건 아닐까 몰라

신문을 봐도 남일이라고만 해

잘 웃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아

참 신기도 하지 어른이 된다는 건

 

                                                                                  이승환 - Cycle(5집), 1997

 

피터팬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것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20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영화의 제목을 듣고는 아, 나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른이란, 아기 공룡 둘리의 고길동이자 피터팬의 후크 선장으로 대표되는 이미지였다. 그들은 상상력 없이 꽉 막힌 답답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길 좋아하는 그런 존재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어른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한 결과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자주 접하던 매체(만화, 동화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어른들은, 내가 운이 좋은 것이겠지만, 상상력은 좀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근래에 아기 공룡 둘리의 고길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내가 만난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멋대로 규정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글머리에 올려놓은 이승환의 노래가 나온 뒤 몇 년 후 어른이 되었다. 만 20세가 지난, 법이 보장해 준 어른.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고, 당당하게 담배를 살 수 있었으며, 보호자의 동의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실제로 어른이 되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왔지만,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연장선에 있었을 뿐,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것이 내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또 아니지만, 그걸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법적인 성인이기는 했지만, 나는 내 짐을 오롯이 혼자 지고 살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처음으로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조금 느낀 것은 취직을 하고 난 뒤의 어느 날이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가다가 문득 내 부모님도 나처럼, 아니 아마도 나보다 더 힘들게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그렇게 해서 나를 키워준 감사함과 함께,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였다. 아이를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어른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존재여야 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보호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인 부모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그 순간 불현듯 느꼈던 것이다.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서른 살의 나는 부모님에 대한 경외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고작해야 사회 초년생이던 내가 느낀 것 이상의 무게는 견뎌내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싶었고, 새삼 내 주변의 사람들은 이 무게를 어떻게 버티고 헤쳐나가고 있는지 존경스러워졌다.

 

삶의 무게를 견뎌낼 자신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운이 좋게도 결혼을 했다. 결혼은 법적으로 성인인 두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삶의 세세한 부분을 부모에게 기대고 있던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전보다 중요해지고 커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결혼으로 가정의 안정과 유지를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커졌고, 그만큼 삶의 무게는 분명히 증가했지만, 그것이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결혼을 통해 나는 독립을 했지만, 내 삶의 많은 부분은 부모님 대신 마나님께 기대어져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나의 세계 역시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 환경과 위치는 달라졌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특별히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혼으로 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추가적인 삶의 무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가 된 후에도 딱히 스스로 어른이라는 자각 없이 살고 있던 중에 위기가 닥쳤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직장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고 퉁치면서 지내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직 제의를 받게 되었다. 너무나 지쳐있던 나에게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 후에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너무나 많은, 내 주변의 직장 동료들이 나를 만류했고, 각종 회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련 없이 떠나려고 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권유를 매몰차게 뿌리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내 의지대로 진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게 매정한 태도를 취하기엔 이 회사를 10년 넘게 다니며 맺어온 관계의 무게가 너무 컸다. 이직을 하겠다고 통보는 했지만 내부 정리가 안 되어서 관련 서류를 들이밀기에는 애매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고, 그 기간에도 나는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새롭게 부여된 과업을 착수하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이직한다고 해놓고는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할 정도로 나는 여전히 내게 주어진 책임을 나름 열심히 수행했다.

 

떠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는 날 발견했을 때, 나는 내가 한걸음 더 어른에 다가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더 비중을 두고, 내게 주어진 책임을 자연스럽게 짊어지는 내 모습에서 이전보다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중심이 나라는 것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내가 맺어온 관계와 내가 짊어진 책임의 비중은 이전보다 훨씬 커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나 자신의 비중을 줄이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지켜주고 보살피고 있는 가족을 위해,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을 위해, 내 삶을 유지해주는 월급(^^;;)을 위해 내 욕망을 잠시 후순위로 미뤄두고 주어진 임무를 다 하는 모습이, 내 앞의 어른들이, 그리고 내 뒤를 따라올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내가 어른의 자세를 채득 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나 혼자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해낼 자신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마나님에게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기대고, 내 직장 동료들과 서로 도와가며 내게 주어진 과업을 꾸려가고, 심지어 내 아이의 존재를 통해서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을 떠올려 보면,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일 뿐이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를 과연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잘못 생각한 어른의 정의처럼, 지금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도 잘못되었을 수 있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위치도, 니체의 초인처럼 도달하지는 못하고 영원히 가까워만 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피하지 않고 충실히 이행하면서, 내 앞의 문제들을 이겨내고, 삶을 지속해가는 과정 속에서 어른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그렇게 나는, 결코 원한 것은 아니지만, 어른의 위치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 기쁜지, 슬픈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이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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