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n in NeverLand

일본어 오타쿠가 한국식으로 정착한 오덕후라는 단어가 있다. 현재 이 단어가 가진 다양한 층위와 의미 때문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좁은 의미로는 일본 애니나 프라, 피규어 등에 열광하는 사람을 뜻하고, 넓은 의미로는 어떤 분야에 매우 빠져있는 사람을 뜻한다. 별이의 아빠인 나는, 좁은 의미로나 넓은 의미로나 오덕후(로 볼 수 있)다. 당당하게 오덕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랄까...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걸 잘 아는 상황에서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 중고등학교 때 축구 선수로 뛰다가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한 사람이라면 축구를 배워본 적 없는 사람보다 월등히 축구를 잘하고, 조기 축구에서도 눈에 띄는 실력을 지녔겠지만, 프로 선수들 수준을 오히려 더 잘 알기 때문에 축..

마나님과 나는 생활 영역의 많은 부분에서 암묵적인 합의로 분업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는 일은 마나님이, 분리수거를 하고 기계적인 수리는 내가 하는 식이다. 물론 이게 칼로 무 자르듯이 정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고, 식사 후 테이블 정리같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부부는 묘하게 선호하는 분야(나는 이과, 마나님은 문과라서?)가 달라서 큰 트러블 없이 분업이 이뤄졌다. 비슷한 맥락이 육아에도 적용되었는데, 체력적인 면이나 관심사가 아이와 좀 더 가깝다는 이유로 별이의 놀이 육아는 내 몫이다. 마나님과 내가 함께 있을 때 별이와 주로 놀아주던 상대가 아빠라는 건 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와서, 마나님과 내가 각자의 할 일..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서둘러 걷고 있는 중에 마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지, 이 시간에?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음? 영상 통화??!! 걸려온 전화가 영상 통화인 것을 확인하자 어떤 상황인지 살짝 짐작이 간다. 전화 연결을 하자 별이의 얼굴이 보인다. 역시 그랬군.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마감일이 가까워져 가면서 최근 주중에 집에 일찍 들어간 일이 없었다. 주 52시간...? ㅋ 지난 주말에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아직 7살인 별이는 다음 주말까지 아빠를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 당연하겠지. 그래서 아마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아빠를 잠시라도 만나려고 결심이라도 했었던 모양. 그런데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만나지 못한 것이 속상했던지 아빠가 보고싶다며 ..

세상 참 좋아졌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이제 일상의 많은 것들을 사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내 세대가 어릴 때만 해도 사진은 이렇게 흔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있어야 했고(?!), 카메라 안에 들어가는 필름을 사야 했으며(??!!), 다 사용한 후에 인화(!!!)를 해야 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나면 정해진 매수를 다 찍을 때까지 인화를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는데 필름이 남은 경우에는 아무 사진이나 찍어서 카메라에 들어간 필름을 다 쓰거나, 혹은 경제적인 이유..